(유다서 1:20-23) 영생에 이르도록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유다서 Date : 2017. 12. 15. 07:14 Writer : 김홍덕

신약성경에 있는 사도들의 서신서의 내용은 거의 다 온전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대한 권면과 위로, 그리고 복음에서 벗어난 이들을 향한 책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모든 서신서에 나오는 온전한 믿음을 가진 이들을 향한 권면은 하나 같습니다. ‘구원을 이루라’, ‘푯대를 향하여’, ‘영생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말씀들은 얼핏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어가라는 권면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들이 미완을 완성시키라는 것으로 보인다면 그 신앙의 안목이 육신으로 신앙적인 공로를 쌓는 사람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을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믿는다고 말하고 그 말한 것을 육신으로 지키고 노력하는 안목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임종을 앞둔 부모님이 예수 믿는다는 말 한 마디 하는 것을 그렇게 의미를 두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평생 하나님 믿지 않다가 죽을 때 ‘믿는다’ 말하고 죽으면 되는 것인가?’라는 말도 안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생명의 세계입니다. 어쩌면 이 생명의 세계 하나를 설명하시기 위해서 우리 인생이 나고 자라고 살다 죽도록 하셨는지도 모른다 싶을 정도로 우리에게 이것이 생명의 법이라는 것을 설명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달리 생명, 생명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살아감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영생을 이루는 것이며, 푯대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정체성의 문제, 살아가는 주체의 정체성의 문제라는 것을 알 때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도 알게 됩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이전에 없던 존재가 어떤 목적 아래서 존재하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생물학적으로 나서 그 생물학적 육신이 삶의 본질이라고 여기면서 살던 육신에 속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육신 가진 인생의 목적을 보고서 ‘저것이 내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 목적이고 의미구나!’라고 깨닫게 될 때 미운 오리새끼로 있던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 거듭나는 것과 같이 그 삶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인생의 목적을 알고 살아가는 존재로 회복된 것이 거듭남이고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을 알면 왜 구원이 거듭남이며, 회개는 무엇이며, 영생은 또 무엇인지가 분명해지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 마치 여행 가방인양 늘 믿는다는 것을 상기하고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일이나, 구원은 이렇게 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나, 건강을 회복하려면 무엇을 하라는 것이나, 죄를 지었으면 주기도문을 10번 해라는 것과 같은 말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본성으로 있는 것을 그렇게 단속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뺏을 수 없는 것입니다. 뺏을 수 없다는 것은 순교적 측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릴까 신경 쓰거나 다른 노력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으로 뺏기지 않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조건처럼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웃기는 일입니다.


유다 사도의 유다서, 영지주의를 경계하는 말씀의 마지막에도 이렇듯 영생을 이루어가는 것을 온전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권면하고 있다는 것은 온전한 믿음,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육신의 의미를 잘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영생을 이루어가는 삶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육신으로 영생을 이루어 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런 위로의 말씀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책망의 대상이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인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말씀이 우리가 아는 그 생명의 법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목적이 있어야 생명이라는 것, 그리고 생명은 수고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남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존재하게 주신 육신을 하나님의 의를 담는 그릇, 거하시는 성전으로 자신을 드림으로 생명의 본성과 같이 하나님의 의가 그 육신을 통하여 안에서 밖으로 표현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육신의 의미이고 행함의 의미며, 믿음과 구원의 본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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