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후반부에 아주 감동적인 고백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한 고백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이는 요셉의 가족들이 애굽 왕 바로 앞에서 문안할 때에 바로 왕이 야곱의 나이를 물은 것에 대한 야곱의 고백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름 신앙의 여정을 보낸 사람들이 읽으면 뭔가 애잔한 마음이 들게 하는 고백입니다.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의 삶은 정말로 그러했습니다. 출생부터 쌍둥이 형 에서와 다툼을 했으나 이기지 못했고, 장자의 권한을 빼앗고자 아버지를 속이기까지 했지만 기껏 얻은 것은 이삭의 재산이 아니라 하늘의 이슬과 포도주 즉 하나님의 의를 얻을 뿐인데 형에게 쫓겨서 돌베개 베고 자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아내 라헬을 얻기 위하여 7년을 수고했으나 라반이 속이고 레아를 주어 또 7년을 일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부유케 되자 라반의 아들들과 다투고, 그리고 다시 본토 아비 집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여정을 떠나고, 그 마지막에 천사와 싸워 환도 뼈가 부르지는 일도 모자라 자신의 아들들이 그 형제를 팔아버리고 아비인 자신에게 죽었다고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보낸 야곱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의 여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곧 이 땅 위의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심령을 가진 사람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야곱이 보내는 그 험난한 세월 역시 우리의 세월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야곱의 여정이 다른 곳이 아닌 애굽에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를 좇아서 산 세월, 하나님께서 후손으로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살아온 삶의 여정과 세월을 자신의 후손들이 어떤 나라를 이룰 수 있도록 비옥한 땅을 얻어서 정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인생 말년에 기근에 힘들어 하다가 결국은 애굽으로 이주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굽으로 들어가게 된 야곱 곧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으로 가서 그곳에서 정착하여 살다가 그 수가 너무 많아지므로 오히려 세상과 같은 애굽의 사람들이 이를 두려워하여 종으로 삼고 그 종된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하나님께 신원하므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하여 내시는 출애굽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어차피 애굽에서 건져 내실 것이고, 또 이스라엘의 후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면 애굽이 아닌 야곱에게 기근을 이길 기적을 주셔서 처음부터 가나안으로 안착하시게 하시면 될 텐데, 그랬다면 아들 요셉이 그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기도 한데 왜 이런 힘든 여정을 거치게 하셨을까요? 비슷한 여정으로 출애굽을 할 때 광야를 40년이나 거치도록 하셨을까요?


창세기, 그리고 아브라함에서 야곱까지의 여정은 왜 성경에 있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것은 남의 나라 신화나 역사 정도의 가치 밖에 없을 수 있고, 창조론도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압도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이 성경을 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냥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 속에 나오는 기적을 일으키는 신의 능력을 믿어 나도 그 능력의 도움을 받으려고? 아니면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내용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서?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의 내용이 정말로 일어난 실제적 사건이라고 그 객관성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면 사람은 어느 한 구석 의심을 하게 됩니다. 단순합니다. 자기도 그렇게 해 보면 됩니다. 물 위를 걸어보면 됩니다. 예수님이 나도 예수님과 같아진다고 하셨으니 해 보면 됩니다.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남의 병은 고사하고 자신의 두통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공동체의 신앙으로



야곱의 여정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여정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여정에 관한 것이고,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일원 곧 하나님의 의가 자신을 다스리는 것에 동의하게 되기 위해서 그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이 하나님의 경륜으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서 야곱에 이르기까지 그 여정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여정, 한 개인으로서의 여정을 마치고 민족과 나라로서의 여정으로 전환하는 시점이 바로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시점입니다. 생각해보면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천지창조의 시작 전에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도 인생의 목적도 알 수 없는 자리에게서 시작해서 아브라함과 야곱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 개인의 신앙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으로 전환되려 합니다. 창세기가 한 개인의 자아 안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말씀이라면,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이어지는 말씀들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민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개인으로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이제 자기 외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나님을 만나가는 과정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다른 사람과 함께 신앙의 여정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함께 누리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시대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되는 안목을 가지게 되는 여정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는 사람이 단체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공동체에 대한 안목이 열리는 것, 하나님은 믿는 신앙이란 너무나 다른 사람들을 서로 수용해가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 다름을 서로 섬기면서 가는 것이라는 것이 열린 안목으로 전환되어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야곱이 한 개인으로서 또 족장으로서 하나님의 경륜의 여정을 마치는 곳은 세상의 가치관이 의가 되어 다스리는 나라 애굽이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보게 되는 세계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혼자서 굴속에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길 것 같지만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서로 의지하게 살도록, 그리고 또 이 땅위에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나라 곧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경영하시는 뜻을 가지신 분인데, 단지 자기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사람과 세상과 접촉을 끊고 고고한 듯 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원이나 신부나 수녀 그리고 또 외딴 곳에 거할 곳을 짓고서 그야말로 서로 용납할 수 있는 사람들만 모여서 서로가 마음에 죄를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기로 규율을 정해서 그것을 지키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신앙은 대우를 받을 것이 아니라 회개가 필요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등을 지려하는 것 역시 같은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세상 사람과 함께 있으면 죄를 지으니 가급적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면 그 사람의 신앙이 온전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휘둘리는 정도로 빈약하고 허약한 것입니까? 그렇게 휘둘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는 것이지 세상과 어울려 살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세상이란 도화지에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 그리고 오히려 세상에 가서 종살이하듯 그들을 섬겨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여정이 애굽에서 마친 것은 민족으로서의 새 세계의 시작을 위한 경륜



야곱으로 인하여 애굽에 들어가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그곳에서 처음에는 대접 받는 삶을 살지만 그 수가 많아지고 출산하는 능력이 애굽사람보다 월등하여 그 수가 많아지자 애굽의 두려움을 사게 되어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종으로 삼고 노역을 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노역이 가중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간구하므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과 같이 애굽에서 올려지는, 즉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게 됩니다.


이는 천지창조의 때에 셋째 날에 세상의 모든 물이 한 곳으로 모이므로 땅이 드러나듯,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드러나게 되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어서 시작되는 또 다른 여정, 애굽에서 시작되는 여정은, 또 하나의 창세기와 천지창조와 같습니다. 


성경 창세기의 천지창조가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는 사람이 나오는 여정이라면 출애굽은 민족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시작되는 세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개인의 신앙 여정의 상징인 야곱의 여정이 애굽에서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그 이후는 민족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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