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여정에서 <세례>는 절대적인 과정이다. 다분히 형식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교회, 천주교와 기독교 외에 여기서 파생된 신양성경을 경전으로 채택한 거의 모든 종교에 있어서 세례는 중요한 신앙 과정이다. 물론 종이로 나타나는 세례증서가 신앙의 여정이라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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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라는 것은 헬라어로 밥티스마라는 말로 '물에 잠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서, 아니 한 사람이 존재의 목적과 정체성을 알아 가는 과정에 물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매일 세례를 받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세례를 주신 것은 당연히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세례 증서 때문은 아니다.


세례는 사람이 물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은 죽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물에서 나온다는 것은 다시 사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물에 잠겨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세례를 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셋째 날의 창조 과정이다. 천지창조 셋째 날, 뭍이 바다에서 드러나게 되는 과정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천지창조 셋째 날 

 바다에서

 땅이 드러남

 세례

 물 속에서 

 흙인 인간이 잠겼다 나옴 



이것은 사람이 바다 안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바다가 궁창 아래의 모든 물을 모은 곳이라는 것임을 생각하면 형식과 세상의 부귀영화와 물질과 도덕적 행함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해갈하려는 삶은 마치 물에 잠긴 것과 같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가진 삶으로 가는 과정으로 이것을 바다에서 뭍이 드러나게 하신 창조의 과정으로 표현하신 것이다. 사람은 땅과 같은 흙으로 지은 존재니 말이다.


성경에서 바다는 항상 세상을 의미한다. 바다는 지구상의 모든 물이 모이는 곳이다. 그것이 더럽고 깨끗하고를 가리지 않고, 그것이 어떤 것에 사용되었던 다 모이는 곳이 바다다. 그야 말로 세상을 대변하는 광활한 지구의 표면인 것이다. 사람의 존재 형식에 관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그것이 모여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바다에서 땅이 드러나는 것과 같이, 사람도 그런 모든 세상적인 것에서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겪어야만 천지창조의 과정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그리스도를 알고 인잔의 존재 목적과 삶의 목적을 밝히 알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천지창조의 셋째 날인 것이다. 그래서 이 천지창조는 그리스도의 성품이 사람의 것이 되는 과정인 것이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그 정체성으로 삼아 살게 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존재 형식에 속한 돈과 명예와 도덕과 고상함과 같은 모든 형식을 추구하는 삶으로는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와 같다는 것을 고백하고 그 세계에서 나오게 되는 과정을 천지창조의 과정에서는 바다에서 쿹이 드러나는 것으로, 또한 세례로 표현하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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